What is to be done

from 일상의 독백 2008/11/05 01:39

Prologue.
다시 바빠지기 전에 하루 휴가 내 보려다 본전도 못 건졌다.
말을 꺼내지 말던가, 꺼냈으면 결실을 보던가. 우물쭈물하다 결국 본전도 못 찾는 내가 한심해서 한숨이 나왔다.

*****
일찍이 레닌은 말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신해철은 말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쳐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남자와 일이 아닐까.

남자는 워낙 젬병이니 고민해봤자 답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건 대부분 평균 정도는 하는 것 같은데 남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바보축구온달멍게말미잘해삼이 되어 버리니.
내가 나를 봐도 답답하고 한심한데.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오늘 그들이 사는 세상 주준영을 보면서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어댔다.
저렇게 자기가 원하는 건 당당히 표현할 줄도 알고, 이쁜 여우짓도 할 줄 알고,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걸 안다고 되는 일이면 내가 이러고 있을까.

일은...글쎄.
리서치 일은 너무 힘들고, 짜증나고, 때로는 역겹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망가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주위 사람에게 절대로 추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만 5년을 꼬박 채우고 있는 현재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게으름과 귀차니즘, 계획없음이 가장 클테고...
우선 이 일이 아무 의미없이 쳇바퀴 돌아가듯 그저 주어지는, 혹은 일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군대 삽질 같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알고 이해한다는 건 꽤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은 변함없다.
둘째, 사장님이 항상 옳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기업인이라 생각하고 그런 사장님의 영향과 흔적이 곳곳에 배인 우리 회사가 좋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부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다른 삶을 꿈꾼다.
내 몸과 마음을 망치지 않으면서 하나뿐인 짧은 내 인생을 좀 더 즐겁고 알차게 보낼 다른 인생이 존재하리라 생각하고 그게 뭘까 고민한다.
일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그 매력을 덮고도 남을 수많은 악재들이 존재하며,
좋은 회사이긴 하지만 이 곳 역시 말도 안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보통의 회사이며,
사람들이 좋긴 하지만 그 좋은 사람들 늘 떠나보내는 역할도 이제 더이상은 싫다.

스물둘도 아니고 서른둘에. 인생의 중요한 두 가지에 대한 철학이 없다. 기준과 원칙도, 방향성도, 계획도 없다.
그저 좋고/싫고/모르겠고. 이건 절대 안 돼/참을만 하고/어떻게 되겠지/아무 생각없고. 한정된 몇 가지 칸에서만 말을 이동시키고 있다. 남들은 히든 카드도 보고, 점프도 하고, 때로는 몇 칸 되돌아 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전진하고 있는데 나만 출발선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꼴이다. 모험같은 건 하지 않고 늘 평탄한 곳으로, 안정만 찾으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전진을 못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심각한 자기 반성과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냥저냥 서른남짓 살아온대로 그냥저냥 30년이 또 흘러갈테고
그냥저냥 5년을 지내온대로 또 그냥저냥 5년이 더 빨리 흘러갈텐데 말이다.
언제까지 느긋해도 아니 느긋한 척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순간순간의 마음은 조급하면서 큰 시간 속에서의 고민은 없는 나, 무엇을 할 것인가.
*****

Epilogue.
으실으실 감기 기운에 머리까지 계속 아팠는데, 밤이 되자 목통증까지 심해진다.
자려고 누웠다가 결국 잠 못들고 일상의 독백 중. 내일은 진짜 침 맞으러 가봐야겠다.
2008/11/05 01:39 2008/11/0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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